<스포 주의>
히어로 영화에서는 주인공만큼이나 중요한게 바로 빌런(악당)이다. 세상엔 매력적인 빌런들이 굉장히 많고, 나처럼 히어로들보다는 그런 빌런들에 더 매력을 느껴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정의보다는 악의 편에 서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그렇다면 개성 넘치는 빌런들을 총집합시켜서 하나의 팀을 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오늘 개봉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다. DC코믹스에 등장하는 빌런들을 한데 모아 팀을 꾸린 것이다. DC의 간판 빌런인 조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매혹적인 할리퀸, 데드샷, 엘 디아블로 등이 등장하여 큰 기대를 모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차기 DC코믹스 기반의 영화를 다시 부흥시킬 기대주로도 점지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로튼토마토 지수 30점대를 찍으며 심상치 않은 출발을 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싶었으나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방금 막 보고 온 지금은 조금은 납득이 되는 점수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수어사이드 스쿼드 개봉일 조조 관람 후기 솔직하게 적어보겠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내용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이이제이'만큼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물리친다는 것인데, 즉 악당들을 모아서 더 큰 악에 대처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래서 감옥에 있던 할리퀸, 데드샷, 엘 디아블로, 킬러 크록을 데려오고 부메랑은 잡자마자 바로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거기에 슬립낫과 카타나, 이들을 통솔하는 군인은 릭 플래그, 깍두기인 조커, 그리고 메인 빌런인 인챈트리스까지 치면 등장인물만 벌써 10명이 넘는다.
각자 개성 넘치는 빌런들을 이렇게 모아놨으니 볼거리와 재미는 따놓은 당상이 아닐까? 하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고 나서, 아니 보는 중에도 들던 생각은.... '글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롤에 비유하자면 리메이크 전의 갱플랭크를 보는 것 같다. 앵벌이와 딜링을 동시에 책임지는 혀어어업상, CC기 면죄부를 주던 W, 공격력과 이속 버프를 주던 E, 그리고 글로벌 광역 궁극기까지 스킬 하나하나가 정말 버릴 것 없이 빼어난 것들이었지만, 정작 그걸 한데 모아놓은 챔피언인 갱플랭크는 오랫동안 실직자 신세였다. 좋고 매력적인 걸 다 모아놨다고 그 속성들이 결과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일단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장점을 말해보자면 빌런들을 한데 엮어 만든 볼만한 영화라는 것, 시간 나고 할 거 없을 때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점, 할리퀸, 할리퀸, 할리퀸, 그리고 마고 로비 정도다.
일단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주인공은 사실 데드샷과 할리퀸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관련 스토리도 가장 많이 나오니까. 아무래도 데드샷과 할리퀸을 따로 영화로 내려고 하는 심산이 아닌가 싶다. 여튼 등장 인물은 많은데 일일이 다룰 수는 없고, 나머지는 다 들러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어중간하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쳐버리는 느낌이 이런게 아닐까. 일단 위의 포스터, 그리고 이제까지 공개되었던 다른 포스터들과 트레일러들을 떠올려보자.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비춰지는가? 우스꽝스러운 글씨체, 너무 화려하고 총천연색이라 조잡하게마저 느껴지는 색감 등 대놓고 B급을 표방하는 이른바 '쌈마이' 영화라고 광고하는 것 같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느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이미지는 '통제불능의 악당들이 모여서 아웅다웅하는 유쾌한 난투극' 정도였다. B급의 느낌 속에서 적절한 액션 씬과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빵빵 터지는 유머를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웃긴' 영화가 아니다.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영화관에서 재밌는 영화 보면서 스트레스나 풀어야지라는 생각이라면, 추천하기가 좀 망설여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포인트는 딱 2가지다. 할리퀸, 그리고 뜬금없는 음악. 우선 정말 별거 없는 음악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이미 언론과 각종 매체를 통해 무슨 음악이 나오는지 뻔히 다 아는 상황이라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유쾌하면서도 웃긴 분위기를 자아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뿐이고, 무엇보다도 편집을 그냥 재밌게 한 것 뿐이지 영화의 내용 자체가 재밌던 것은 아니다. 물론 가끔씩 등장인물들이 개그성 멘트를 툭툭 던지기는 한다. 그런데 그게 재미가 없다. 그래서 문제다.
게다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유머의 비중은 할리퀸이 전담하다시피 할 정도로 99.99%가 할리퀸이라는 캐릭터에게 치중되어 있다. '광녀'라는 캐릭터의 성격상 유머를 잘 풀어내는데 분명 할리퀸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게 다 또라이 컨셉에서 나오는 또라이스러운 상황에서 연출되는 또라이같은 개그 뿐이다. 그러니까 '피식'하는 웃음이지 '깔깔'하는 웃음이 나오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액션이 완전 무쌍을 찍는가 하면 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일단 '빌런'은 아닌 릭 플래그를 제외하고 인챈트리스의 오빠까지 합친다면 빌런은 총 10명이다. 그리고 등장과 거의 동시에 광속으로 퇴장해버리는 슬립낫을 제외하면 9명, 하는게 거의 없는 부메랑을 빼면 8명으로 줄어든다. 슬립낫은 도대체 왜 나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킬러 크록은 이 패거리에서 떡대와 완력을 상징하는 빌런이지만 그 위용을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없고, 격투씬도 어두컴컴한 밤(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이 밤이다)이거나 아니면 흙탕물 속이라 그 위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의외로 비주얼 담당일지도.
엘 디아블로는 중반까지 전투조차 안하다가 데드샷의 도발에 빡쳐서 파이어뱃 코스프레 한 번 해주고, 마지막 결투에서 인챈트리스의 오빠라는 작자와 메챠쿠챠 한게 전부다. 실제로 불을 쓰는 능력이 있다면 가히 위협적이고 파괴적이겠지만 스크린에 비춰진 그의 능력(그리고 볼거리)은 기대 이하였다.
인챈트리스는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이자 흑막(사실 흑인 아줌마가 최종보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하는 것은 군인들한테 뽀뽀하고 이상한 번개 뒤에서 춤추는 것 밖에 없다. 마지막에는 직접 몸을 써주기는 하지만, 잘 싸우다가 갑자기 초능력 비슷한걸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무장해제 시키고는 자기 밑으로 오면 살려주겠다며 협상(?)을 시전하는 기적의 협상법을 보여준다. 아니 애초에 무장해제 시키고 그냥 줘팼으면 다 죽였을듯. 인챈트리스의 오빠? 그냥 덩치만 크고 도움은 거의 안되는 비주얼 담당이다.
카타나는 존재 자체가 심하게 부담스러운 캐릭터다. 특히 남편의 영혼이 들어있다는 칼을 부여잡고 질질 짜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액션씬 대부분도 데드샷과 할리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 있다. 그나마 할리퀸은 근접전으로 후려패는 맛이 있지만 데드샷은 총질 전문이라 조금 심심한편.
그렇다면 조커는 어떨까? 사실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크게 주목을 받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조커 때문도 있다. '히스 레저'라는 전설급 조커가 나온 이후로 처음 재등장하는 조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우가 '자레드 레토'로 바뀐만큼 조커 자체도 어떻게 바뀌었을지 기대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조커는 비중이 매우매우매우매우 낮다. 일단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멤버가 아니라 스크린에 나올 기회가 적다. 그나마 나오는 씬도 짤막짤막하거나, 대부분 할리퀸의 회상 속, 또는 재회했을 때 뿐이라 시종일관 할리퀸과의 커플 염장질 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내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에 실망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니다. 히스 레저가 아닌 자레드 레토가 연기해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나는 자레드 레토가 조커의 이미지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커를 '관심종자처럼 분장하고 다니는 거물급 조폭A'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일단 조커 특유의 광기와 싸이코스러움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었다. 자기 손등에 입맞춤을 시켜 복종하게 하고 사악하게 웃으면서 총 쏘는 것은 다른 무명 빌런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더군다나 나이트 클럽 같은 곳에서 여자들이 춤추는 걸 구경하고 고담의 왕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냥 고급 조폭이지 내가 생각하는 조커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미지다. 히스 레저의 연필 사라지는 마술만큼이나 신박한 것은 없었던걸까.
자레드 레토의 조커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미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만 뭐랄까... 약간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를 보는 듯한 기분이 어렴풋하게 들었다는 점.
결론적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대놓고 쌈마이로 갔으면 차라리 더 재밌고 흥했을 것 같은 영화' 정도다. 잘 만들려고 노력은 했는데 결과물은 쌈마이인 것과 처음부터 대놓고 쌈마이를 표방한 것은 큰 차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이 영화에서 건질 것은 '할리퀸' 마고 로비의 재발견과 앞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독자적인 빌런 영화들에 대한 기대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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